정 인 삼

[스크랩] 한국농악의 산실, 정인삼선생

가을산1 2007. 7. 8. 06:21

    한국농악의 산실 한국민속촌농악단장 정인삼 선생

 

정인삼 하면 한국민속촌 농악단장으로 한 평생을 한국 농악 보존과 제자 육성에 기여한 사람으로만 평가하고 있다. 간혹, 정인삼이 한국전통무용가요, 춤꾼이라 하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춤꾼 정 인삼을 표면상으로 민속촌 농악단장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정인삼은 16세부터 호남지방의 농악을 배우면서 개인놀이인 부푸춤(일명 상쇠춤)과 고창지방에서 추어지었던 소고춤을 고창의 유만종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았다. 또한 전주에서 전주국악원을
드나들면서아쟁, 가야금, 거문고, 장고장단 등을 배우면서 무와 악을 겸하게 되었다.
정인삼은 본격적인 춤꾼으로 성장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박금술 선생으로부터 한국무용의 전방과 창작부를 사사 받으면서 춤꾼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도 개인의 신상문제로 인하여 춤꾼의 꿈을 잠시 접고, 농악인의 길로 들어서 전국의 크고작은 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호남우도굿 상쇠 활동을 하다가, 1974년 한국 민속촌이 용인시 기흥읍 보라리에 설립되면서 민속촌 농악단장으로 용인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정인삼은 민속촌 농악단장으로서 안주하지 않고 호남지방의 소고춤을 집대성하여 정인삼류의 소고춤을 완성하고, 화성제인청의 이동안(중요 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보유자 1906-1996)선생에게 경기지방의 전통무용인 <신칼 대신무>와 <진쇠춤>을 전수받았다. 이동안 선생 사후, 선생의 제자인 경기도 무형문화재 정경파 선생으로부터 꾸준히 사사받아 호남지방의 호남승무와 살풀이, 소고춤, 상쇠춤, 설장구춤에 이어 경기지방의 신칼대신무와 진쇠춤까지 이어받은 영원히 노력하는 당대의 춤꾼이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 무용협회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정인삼은 민속촌농악단을 이끌면서, 한민족 전통놀이의 재인식이라는 명분아래, 한국민속촌에서 국가 지정 문화재인 탈춤놀이와 각 지방의 농악놀이, 외줄타기 등의 시연공연과 함께 초청공연을 통해 한민족의 전통문화 재인식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서울성동공고 700명, 은광여고 800명, 수도공고 400명, 서산농고 200명을 지도하여 “고싸움”을 연출하였고, 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는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공주농고 300명과 해성여고 리본체조를 5대주 음악을 배경으로 연출함과 동시에, 300개의 소고와 전립(상모)을 외국인들 손에 들려 보내 한민족의 문화를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전하는 문화 전도사의 역할을 하였다.
또, 정인삼은 전국민속경연대회를 통해 크고 작은 상을 수상하였는데 85년 이천 거북놀이 연출로 문공부장관상을, 86년 용두레질 놀이 연출로 대통령상, 87년 여주 쌍용줄다리기 연출로 대통령상과 함께 87년 경기도문화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혹자는 정인삼을 말하기를 육십 평생 농악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한다. 실제 한평생을 혼자 살아오면서 농악지도와 춤 지도, 그리고 잊혀져가는 민속놀이를 발굴 보급하였고, 민속촌 농악단원과 함께 매주 민속촌 공연장에서 30여년간 한결같이 상쇠춤을 추고 있다.
1998년 9월에는 국제 유네스코 주최로 명인명무전에 초청되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초청 발표회를 갖고, 그 해 9월~10월엔 일본 국립극장으로 초청되어 소고춤을 추었고, 1998년 10월에 고 이동안 선생 3주기 추모공연 때에는 경기문화예술회관에서 <신칼대신무> 발표회를 가졌으며, 1999년 5월 11일에는 화성 제인청류 정경파(경기도 무형문화재 8호) 8회 발표회에서 제자 정철기, 유연곤과 함께 <신칼대신무>와 <진쇠>를 경기문화예술회관에서 재연하였다.

정인삼은 전통춤을 배워 혼자만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여러 제자들에게 꾸준히 춤을 가르치고 양성하여 전국 각지에서 활동케 하고 있다. 먼저 소고춤을 정철기, 광명의 임응수, 대전 시립무용단원인 김한덕에게 전수시켜 그 맥을 잇게 하고, 상쇠춤과 장고춤 농악 등은 30년간 광주농고, 금산농고, 공주농고, 김천농고, 원삼중학교 등의 학생 약 500여명에게 가르쳐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악인이면서 무용인으로 또 연주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정인삼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집대성이라는 정인삼류 설장고 춤을 가르치고 있으며, 전국 각지의 특이한 춤이거나 꼭 보존해야 하는 춤이라면 직접 배워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한편, 먼저 세상을 떠난 농악명인 추모제를 3년마다 한번씩 자기 자신이 제수를 장만하여 제를 올려 기리고 있으며, 1999년부터는 사재를 털어 한국 민속촌에서 전국농악 명인대회를 개최, 농악부분의 개인놀이를 매년마다 치루어 단체 판굿에 치우친 농악의 발전과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 농악보존회 회장을 맡아 후진양성에 구슬땀을 흘리며 육순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마당에서 젊은 농악인과 함께 뛰는 정인삼이야 말로 진정한 한민족 문화 지킴이다.

- 취재 김 성봉

* 신칼대신무  무속무용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신칼이라는 것은 무속에서 쓰이는 신장대와 비슷하며 약 70cm 정도 대나무를 쪽을 내어 곱게 다듬고 위 끝은 칼끝처럼 뾰족하게 다듬는다. 긴대의 양면에는 한지를 약 20cm 정도 넓이로 잘라 소담하게 맨다. 음악은 삼현 육각에 부정 중모리, 엇모리, 살풀이, 터벌림, 덩덕궁이 구음이 따르고 복색은 흰 두루마기에 남색 쾌자에 갓을 쓴다.

  

* 진쇠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궐에서 만조백관을 불러 모아 향연을 베풀며, 왕이 각 고을의 원님들을 불러 춤추게 하였는데, 이 때 원님들이 쇠를 들고 춤을 춘데서 유래된 것이다. 복색은 무관복 차 림으로 하고, 꽹과리 채 끝에 오색포를 달아 꽹과리를 치면서 추는 춤인데,

춤사위가 남성적이 며 매우 독특하다.

  

*정자선  정읍 지방의 권번출신 무용가로써 아들 정형인과 화성제인청의 한성준에게 춤을 가르쳐

조선 최고의 춤꾼으로 만든 당대 대가요. 스승이다.

            

출처 : 국악여행
글쓴이 : 국악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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