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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스크랩] 달성 배씨(達城裵氏)

가을산1 2006. 11. 14. 20:01
1>시조 :

 

      달성 (達城裵氏)  

 

 1> 시조 :  배운룡[裵雲龍]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달성(達成)은 경북 최남단에 위치한  지명으로 삼한시대에 달구화, 또는 달구벌이라 불렀고,
     757년(신라 경덕왕16)에 대구현으로 개칭하여  수창군에 속하였다.
     조선 영조조에 구(丘)를 구(邱)로 고쳐
대구(大邱)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시가지를 이룬 전역이 대구부로 독립되고, 외곽지와 현풍군을 합하여
달성군으로 개칭하였다.

     달성(達城裵氏)는 고려 창업의 주역으로 개국공신에 책록된 배현경(裵玄慶)의 6세손
     
운룡(雲龍)을 1세조로 받들고 있다.
     [대동보]에 의하면 그는고려조에서 가락군에  봉해진
사혁(斯革)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고려 중엽에 벼슬을 지내고 공을세워 달성군에 봉해진 연유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달성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그후 달성씨는 민부 전서 영(瑩)의 아들 정지(廷芝)와  정란(廷蘭)의 형제대에서 가세가
     크게 융성하여 명문의 기틀을 다졌다.
     10세의 어린나이로 금위에 들어갔던 정지(廷芝)는 충렬왕때 별장으로 연기(燕岐)에 침입한
     거란군을 격파하여 용맹을 떨쳤으며, 충숙왕때 일어난 제주도 반란사건을 진압하는데 공을세워      밀직부사가 되어,  도원수를 지낸 아우 정란(廷蘭)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공민왕때 [정지]의 아들
성경(成慶), 천경(天慶), 함경(咸慶)이 가문의 중추적인 인맥을
     형성하였다.  천경은 공민왕을 호종하여 단성강절공신으로 달성군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우 함경은 맏형인 성경과 함께 홍건적을 토벌하는데 공을세워  정충효절공신으로
     검교장군에 올라 명성을 떨쳤다.

     성경의 손자 균(均)은 우왕때 함양의 사근역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절하였고,
     
을서(乙瑞:균의아우)는 조선이 개국한 후 수차에 걸친 태조와 태종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야은 길재에게 글을 배웠던
인경(仁敬:성경의 증손, 문우의 아들)은 태종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우간의대부를 지내고 뒤에 고부군에 봉해졌다.

     한편 [여지승람]의 편찬에 참여했던
익신(益臣)은 홍문관 교리를 거쳐 양산 군수를 지냈으며,
     
서(恕)는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귀양간 규암 송인수의 억울함을 상소하다가 파직되자
     향리로 돌아가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달성(達城裵氏)는 남한에 총 9,777가구,
     41,26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전북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전남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

     전북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

경북 칠곡군 가천면 영오동

     전남 광산군 동곡면 황용리

대구시 북구 읍내동

     전남 무안군 청계면 청천리, 태봉리

 

     

 

출처 : 사종 / 화수회
글쓴이 : 배병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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